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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5 경 복 궁 - 2004.6.28 (3)

 들어가기에 앞서 : 파란색 글은 설명 보충을 위해 퍼온 글입니다. 퍼온 글은 출처를 꼭 밝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근정정 복원공사 중에 와봤다가 복원 다되면 꼭 다시 와야지 와야지 하다, 복원된지 한참 후에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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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은 흥례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연혁을 대강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 일제에 의해 파괴된 것을 다시 복원함

- 원래 홍례문이었으나, 흥선대원군때 흥례문으로 개명함.

▲1867년 흥선대원군 주도로 임진왜란때 전소된 경복궁 중건.

▲1916년 일제의 조선총독부 청사건립으로 흥례문 일대 훼손. 1917년 창덕궁 화재가 발생하자 교태전 강녕전 동행각 서행각 함원전 만경전 흥복전 등을 철거해 창덕궁 자재로 사용.

▲1990년 강녕전 등 침전 권역 복원 시작. 95년 완료.

▲1994년 동궁권역 시작. 99년 완료.

▲1996년 흥례문 권역 시작. 흥례문, 유화문, 기별청, 금천, 영제교 복원 사업 2001년 10월 26일 완료.

▲1996년 12월 조선총독부 철거 완료.

▲1997년 태원전 권역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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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례문으로 들어간뒤에 바로 영제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영제교의 길이는 13.3m, 너비는 10.3m가량으로 꽤 넓은 편이다.

가운데는 어도(御道-왕의 길)가 있어 왕의 어가가 지나는 길이 있고, 다리 발은 홍예의 형태를 취했고 난간은 하엽동자로 돌난대를 떠받치게 하였으며 난간 전후 법도에는 4마리의 서수가 강바닥을 뚫어져라 감시하고 있다.

광화문 밖의 서수가 뿔이 보이지 않는 데 반해 영천교의 이 서수들은 옆 사진들처럼뿔들이 보인다.

정전의 앞이기에 더욱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는 듯 하다.

이처럼 중요한 다리나 건물 주위에는 잡귀와 사악한 것을의 근접을 막기 위해 이처럼 상상의 동물들을 설치하였다.

영제교의 이 네마리 서수는 조선 후기의 석조미술을 대표하는 조각 솜씨를 보여준다.

힘찬 발톱과 부릅뜬 눈, 억센 비늘 속에 생돋하는 힘이 잘 표현되어져 있다.
<경복궁-설화당-,경복궁-빛깔있은 책들- 참조>


홍례문 안으로 들어서서 근정전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다리를 건너야 했다.

조선왕조의 궁궐은 정전의 외당(外堂) 앞에 명당수가 흐르도록 했으며 그 물 위로 이처럼 다리를 설치했는데 이는 정전 안이 지엄하고 신성한 곳임을 나타내고자 함이었다.

덕수궁의 금천교, 창덕궁의 옥천교, 창덕궁의 금천교가 이에 해당한다

출처 : http://my.dreamwiz.com/nazalle/index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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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너머로 근정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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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복원된 근정전의 모습입니다. 전문가가 아니라 잘 복원된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경복궁의 정전인만큼 위엄을 살려지었으며 유교주의 상하질서를 반영하여 궁궐내에서 가장 격식을 갖추고 있는 건물이다.

우선 박석이 깔린 조정 위에 넓고 높은 기단을 두 층으로 쌓고 기단은 돌난간으로 둘렀으며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계단을 내었는데, 남쪽과 북쪽에 하나씩 동쪽과 서쪽으로 둘씩을 두어 사방으로 막힘을 두지 않았다.

두 층의 기단 위에는 넓은 공간을 두었는데 이를 월대라고 하며 조하 의식등의 각종 행사시 이 위에 공물을 두기도 하였으며, 상월대에는 신분의 놓은 사람이 올랐으며 하월대에는 깃발이나 상징물을 두었고 신분이 낮은 이들은 월대 아래 조정에 도열시켜 상하를 구분지으면서 행사에 격식을 살리는 구조를 지녔다.

이 두 층의 기단위에 정면5간-측면 5간(약30.1m*21.4m)의 목조건물에 중층합각 지붕을 올렸으며, 외형은 2층구조이지만 내부는 1,2층을 훤히 뚫 어놓은 통층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와같은 사원형식의 개방구조를 이루기 위해 붉은 둥근 기둥(이처럼 둥근 기둥들을 두리기둥이라하며 대체적으로 왕이 머무는 전각에 이러한 기둥을 썼으며 왕후가 머무는 연침이나 기타전각들은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다.)들이 굵직하게 건물바닥에서 2층 대들보까지 뻗어있으며, 전면 기둥 윗부분에는 중방을 건너지르고 아래에는 문을, 위에 뙤창을 설치하여 건물이 시원이 펼쳐보이게 하였다.

2층 두리에는 짧게 툇기둥이 노출되고 그 사이에는 또 뙤창을 내었다.

아래층 지붕처마는 넓게 펼쳐지고 윗지붕처마는 훨씬 가볍게 들려 전반적 구성이 안정되며 경쾌하다.

< 참고: 조선시대의 건축의 이해(김동욱 저), 조선 건축사(리화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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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정원의 모습들.

역시 푸르른 신록 그리고 자연과 잘 어우러진 건축물입니다. 단순한 건축물 이라기 보다는 자연의 일부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향원정은 오후가 되면 온통 하얀 색이 된다.

경치가 아름다와서 일까 많은 신혼부부들이 여기에서 사진 촬영을 한다.

그냥 두어도 한 폭의 그림이 되니 사람들이 좋아할 만하다.

경회루가 남성적이라면 향원지는 아늑하고 매우 여성적이다.

이 곳은 왕실 전용의 휴식공간이었다.

향원지의 모습도 역시 경회루와 마찬가지로 사각형을 이루고 있지만 끝 모서리가 둥근 부드러운 사각형이다.

예로부터 우리들의 연못은 이처럼 네모랗고 그 안의 섬은 둥근 형태를 띄었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져 있다는 동양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향원지도 연못 한 가운데 네모란 섬을 두었다.

그리고 그 섬에 육각형의 정자를 지어 그 이름을 향원정이라고 지었다.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뜻이다.

정자는 둥근 섬 한복판에 네모난 기단을 두고 그 위에 돌기둥을 낮으막하게 세운다음 2층의 누각식으로 꾸민 것이다.

1층에는 평범한 난간의 툇마루를 두었고,2층에는 닭다리 모양의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다.

그리고 각 칸마다 예쁜 나무 창살들을 달아 멋을 냈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육각형의 지붕을 올라가서 가운데 꼭대기에 추녀마루들이 모이는 곳에 절병통을 얹어 치장하였다.

향원정은 취로정이라 불리던 정자를 1873년 건청궁을 지을 때 다시 손을 본 것이다.

또한 향원정을 연결하고 있는 다리를 취향교라 하는데 이도 지금과 달리 건청궁이 있었던 북쪽으로 나 있었던 것이다.

이 취향교는 6,25전란으로 불타 없어졌고 지금의 남쪽으로 난 다리는 1953년에 만든 것이다.

건청궁이 없으니 그리로 놓기보다는 편의를 위하여 남으로 논것이다.

또한 이다리 쪽에서 보면 향원정 머리 위로 북악이 걸쳐 보이는데 그것이 보기 좋아 그랬을런지도 모르겠다

출처 :
http://my.dreamwiz.com/nazalle/index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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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전 바깥의 꽃담.

다산과 왕실의 번창을 기원하는 석류,

부귀 영화와 기쁨 상징. 대비의 안녕 기원하는 모란과 나비.

봄의 생명력을 의미하는 진달래와 나비.

곧은 절개를 뜻하는 국화와 나비.

곧은 절개와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매화와 보름달과 새.

군자의 곧은 절개를 상징하는 푸른 대나무

가마의 온도와 첨가 성분에 변화를 주어 다양한 색깔의 벽돌을 제작하여 이렇듯 화려한 꽃담장을 제작할수 있었다.

출처 - 九尾猫. 꼬리아홉달린 고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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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경전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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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경복궁 경회루의 모습입니다.

아쉬원던 모습은 물이 좀 개끗해서 물에 비치는 건물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하더군요.

1412년(태종 12)에 건립된 경복궁(景福宮) 안에 있는 누각.

근정전 서북쪽에 있는 연못 안에 있는 이 건물은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사신들을 접대하던 곳으로 태종이 박자청(朴子靑)에게 명하여 짓게 하였다.

본래 규모가 작은 곳이었으나 1412년(태종 12)에 연못을 넓게 확장하고 큰 규모로 중건하였다.

연못에는 큼직하고 반듯한 섬을 만들고 장대석(長臺石)을 쌓아 호안(護岸)하였으며 둘레에는 하엽동자(荷葉童子)와 팔각의 돌란대[廻欄石]를 두어 돌난간을 두르고 난간의 엄지기둥에는 십이지상(十二支像)을 조각하였다.

또한 돌다리 셋을 가설하여 바깥과 통하게 하였다.

1474∼75년(성종 5∼6)에 새롭게 중신(重新)하고 1506년(연산군 12)에는 연못에 만세산(萬歲山)을 쌓았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돌기둥만 남았으며, 1867년(고종 4)에 경복궁이 재건되면서 경회루도 복구되었으나 이들 돌기둥은 다 철거되고 다시 설치되었다.

옛 모습과 규격대로 했지만 구름 속의 용 모습은 조각하지 못하였다.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건물(重層建物)로 익공계양식(翼工系樣式)이며 전후 툇간 11량 구조에 팔각지붕으로 되어 있다.

경회루가 완성된 모습을 《궁궐지(宮闕志)》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35칸, 이익공식(二翼工式), 다락 위의 나무기둥 높이는 12.5척, 누마루 아래 돌기둥 높이는 15.5척, 일곱칸 중 중앙의 두 칸 칸살이 17척씩, 좌우협칸은 16척씩, 또 그 좌우협칸은 15척씩, 좌우툇간은 15.5척, 옆면 중앙칸 20척, 전후협칸 17척씩이고 전후툇간은 19척씩이다.

겹처마이고 지붕은 거대한 팔각기와지붕인데 지금은 양쪽에 설치된 층층다리로 올라간다.

외진(外陣)과 내진(內陣)으로 구분되었는데 외진의 마루는 낮고 내진 마루는 한단 높다.

고주(高柱) 사이에는 토벽 대신에 종이벽을 설치하여 평주마다 낙양각을 장식하고 금(錦) 무늬로 집 전체를 화려하게 단청하였다.

단일 평면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누각건물이다. 국보 제224호.

출처 - 엠파스백과사전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105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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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오면서 찍은 근정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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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례문 위의 문양

2007/02/25 23:51 2007/02/25 23:51
Posted by 아사달

아사달의 짧은 이야기 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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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의 고궁 시리즈 - 경복궁

    2007/04/10 23:39
    삭제
    서울에 살명서 그 동안 고궁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고궁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그 계기는 2005년 해외여행 때에 베르사유 궁전을 본 것이지요. '남의 나라 궁전도..

댓글을 달아주세요

  1. 2007/04/10 23:3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우와~ 사진도 멋지고 설명도 참 좋습니다.~ ^^;; 궁궐을 참 아름답게 찍으셨어요~ 트랙백 걸어볼께요~ ^^;;
    • 아사달
      2007/04/11 12:15
      댓글 주소 수정/삭제
      개미탐험가님 사진이 훨~씬 멋지네요^^ 칭찬 감사드리고요.
      트랙백 감사합니다.
      트랙백이 많아야 자료 집적이 좀 되는 것 같아서 여기 저기 부탁하고 다닌 답니다.^^
      저도 자주 들어 갈께요. ㅎㅎ
  2. 2012/05/09 04:4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N7uGUO <a href="http://vlqghmaagngw.com/">vlqghmaagngw</a>, [url=http://fweabpdqqttx.com/]fweabpdqqttx[/url], [link=http://iirxtvmbgtkf.com/]iirxtvmbgtkf[/link], http://zsicumuleei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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